영화 항거 유관순 줄거리
영화는 1919년, 일본제국 경찰이 서대문감옥으로 한 여자 죄수 폭행을 당했는지 얼굴이 퉁퉁 부은 여자 죄수를 인수해 가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그 죄수 이름은 바로 유관순이었다.
여옥사 8번 방에 수감된 유관순은 이미 감옥 안이 누울 자리가 없을 정도로 죄수들이 빼곡히 수감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그중에는 같은 동네에서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라던 만석 어머니도 있었다. 만석 어머니는 독립운동을 하다 아들이 죽어 유관순을 원망하지만 기생출신 김향화가 유관순을 변호한다.
작은 소란이 끝나자 감옥 안은 약속이라도 한 듯 누워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걷기 시작한다. 걸으면서 누군가 아리랑을 노래하자 한두 명씩 따라 부르더니 이내 8번 방의 죄수들이 전부 아리랑을 합창하기에 이른다. 여옥사 간수가 조용히 하라며 경고하고 나서야 노래 부르기를 멈춘다. 그러다 간수의 심기를 거슬러 저녁을 굶는 벌을 받는데, 그렇게 되자 대놓고 다시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한다. 다른 방에서도 노랫소리를 듣고 하나둘 따라하더니 감옥 전체의 죄수들이 아리랑을 부르고 이어 애국가를 부른다. 결국 이 사실은 감옥소장에게까지 보고되고, 주동자 색출이 시작된다. 조선인 출신 간수 니시다가 이를 명령받는데 유관순은 다방 종업원 출신 이옥이가 주동자로 몰릴 뻔하는 걸 보고 본인이 나섰다가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이때 일로 옥이, 향화와 조금씩 친해지며 관순은 잠도 번갈아 자야 하는 고된 감방생활 속에서도 잠시나마 웃음을 되찾기도 한다. 그러던 중 건강검진이라며 몇몇 죄수들이 불려갔다 돌아온 뒤, 관순은 방 밖으로 끌려나가 고문실로 옮겨져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한다. 사실 이는 일전의 소동의 주동자 색출 작업이었고, 임산부 죄수였던 임명애가 관순의 이름을 불었던 것. 관순은 항거를 멈추지 않다가 간수장에 의해 벽관 고문까지 받는다. 이는 아주 작은 곳에 처넣어 폐소공포증은 물론이고 한참동안 몸을 움직일 수 없게 하여 나와도 한동안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움직이지 못하니 혈액순환이 안 되어 오래 있을수록 몸도 상하는 악독한 고문. 그 와중에도 옆에서 같은 고문을 당하는 사람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오빠 소식을 듣고 반가워한다.
관순은 무려 일주일이 넘게 굴복하지 않으며 벽관에서 버텨내고서야 돌아올 수 있었고 만신창이가 된 관순을 본 방 동료들은 슬퍼한다. 특히 명애가 미안해하는데, 그녀가 나쁜 사람이라서 관순에 대해 말한 건 아니고 곧 태어날 아이가 걱정되어서. 아이를 옥중에서 키울 수 있게 해준다는 말에 비위를 맞추려 했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낳은 아이는 버려진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명애는 양수가 터지면서 가석방되었다가 출산 얼마 후 아기와 함께 돌아온다. 동료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같이 아기를 돌보며 추운 겨울임에도 자기 옷에서 솜을 조금씩 떼어내 베냇저고리에 나누는 등 자기 일처럼 돕는다. 얼마 후 관순은 협조적인 척하며 감방 밖에 나가 노역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관순이 독종임을 알고있던 간수장은 일부러 제일 힘든 세탁장 노역을 시킨다. 그녀의 속내는 비록 몸은 힘든 일이었지만 밖에 나가면 조금이라도 정보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으로, 감방에선 날짜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 몇 월 며칠인지 알아내 3.1 1주년 때 옥중에서도 만세를 부르려고 계획했기 때문. 빨래에 쓰이는 양잿물 때문에 지문이 닳아없어지기도 하지만, 그 틈에 니시다와 이야기하면서 날짜도 알아내고 남옥사에서 노역하러 나온 남성 죄수에게 오빠 소식도 듣고 자신의 계획을 전달할 기회도 얻게 된다. 3일 후인 1920년 3월 1일, 일하다 쓰러진 척 하며 방에 돌아온 관순은 곧 멀쩡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관순은 기미독립선언서를 암송하고 만세를 부르며 서대문감옥을 봉기시킨다 관순이 만세를 부르기 시작하자 동료들도 부르고, 이를 들은 전후좌우 방 죄수들도 부르고, 여옥사의 소리를 전해들은 남옥사 죄수들도 부르고, 지나가던 중 감옥에서 들려오는 만세 소리를 듣고 놀라 온 거리에 이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 지게꾼 남자에 의해 그 사실을 전해들은 일반인들도 일제히 만세를 부르면서 1주년에 또 일대 시위가 일어난다.
주동자라는 걸 들킨 관순은 다시 고문실로 끌려가 손톱 밑에 꼬챙이를 밀어넣는 끔찍한 가혹행위를 당하고 더 열악한 지하 독방으로 옮겨지고 만다. 그러다 영친왕과 마사코 여왕의 혼인으로 모든 수형자의 형기가 절반으로 감형되는 특사가 단행된다. 더 이상 만세를 부르면 특사에서 제외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긴 형기를 선고받은 관순은 특사를 받아도 6개월을 더 복역해야 하는 처지. 얼마 후 관순과 함께 복역했던 동료들은 모두 출소한다. 애라는 오랜만에 웃고, 옥이는 서명란에 깨알같이 이름 대신 '만세'를 써넣고, 명애는 남편과 재회하며, 향화는 관순의 오빠 우석을 알아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관순은 간수장에게 감형 소식을 고지받을 때도 여전히 항거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해 자궁이 파열, 엄청난 하혈을 한다. 이제 달리 아무도 없는 감방에서 홀로 수감생활을 하는데 어느 순간 소변이 조절되지 않는 등, 건강이 상당히 악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자궁뿐 아니라 방광이 잘못되고 만 것이다. 향화와 우석은 면회를 가 관순을 만나고, 병든 그녀의 모습을 보고 슬퍼한다.
이후 향화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다는 만주로 떠나고, 우석은 니시다를 찾아가 복수하려고 하다가 그가 조선인이라는 걸 알게 되고 싹싹 비는 모습을 보이자 대신 자전거에다가만 분풀이를 해 부숴버리고 떠난다.
또 얼마 후, 이제는 누워만 지낼 정도로 기력이 없는 관순. 3.1운동 1주기 얼마 전에 만났던 그 남옥사 죄수가 식사 배급 담당으로 왔다가 그냥 떠나지 않고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자, 관순은 "그럼 누가 합니까"라고만 대답하고, 남자는 뭔가 느낀 표정을 짓고 떠난다.
이후 유관순이 출소를 겨우 이틀 앞두고 옥중에서 사망했고, 시신은 묘지에 안장되었으나 1939년 그곳에 비행장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유실되었으며, 정춘영은 훗날인 1949년 체포되었으나 반민특위의 강제해산으로 결국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자막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역사적 배경
1910년은 한반도의 역사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조선은 1910년 8월 29일에 대한제국으로의 병합을 선언하면서 일본의 식민지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는 일본의 군사적 강제력과 경제적 지배 아래에 조선이 놓이게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조선인들의 항일 저항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 운동은 처음에는 일본의 강력한 탄압에 직면하면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조선인들은 자주독립의 열망과 민족주의 정신을 유지하며 저항을 이어나갔습니다.
1910년 이후 조선은 35년 동안의 일본의 식민지 지배 아래에 있었으며, 유관순은 1902년에 태어나 청소년 시절에 독립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이화학당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이 학교는 당시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독립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이화학당은 조선 최초의 여학교로서 여성들의 교육과 자주적인 사고를 장려하며, 독립운동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여성들을 배출했습니다.
유관순은 1919년 3월 1일, 일본의 식민 지배에 항거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독립을 선언하는 3·1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이 시기에 유관순은 16세로서 인천에서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이후 일본의 잔인한 고문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유관순은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유관순은 사형에 처해지기 전,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녀의 희생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되며,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여러 차례로 영웅으로 기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희생은 한국인들에게 민족주의와 독립의 가치를 일깨웠으며, 독립운동가로서의 역할과 용기는 한국 역사상 귀중한 것으로 남아있습니다.
총 평
항거"는 한국인들의 독립운동과 투쟁을 다룬 감동적인 이야기로 평가되었습니다. 특히 주요 인물들의 용기와 희생은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했습니다.
영화는 한국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에게 역사적인 교훈을 전달했습니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자국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고, 배우들의 연기력과 영화의 제작 퀄리티도 많은 관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을 잘 표현한 연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항거"를 보다 보면 한국인들에게 국민적 자부심과 자아를 찾게 해주는 작품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과거의 투쟁과 희생을 통해 이어져온 한국인들의 정신과 민족주의에 대한 자부심을 다시금 되새기게 했습니다.
"항거"는 역사적 이벤트를 기반으로 한 감동적이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 많은 관객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한국 영화의 역사에 중요한 작품으로 남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