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 줄거리
1987년 1월 14일, 박처원 대공수처장에게 부하 유정방의 전화가 온다. 같은 날 오후 구급차 한 대에서 의사 오연상, 강호사 한 명, 경찰 두 명이 이동한다. 목적지는 남영동 대공분실이고 그 안에서 박종철을 심폐 소생 중이다. 고문 당하던 박종철이 죽었고 경찰들은 소생시켜 달라 해서 오연상이 강심제를 주사하고 박처원에게도 사실이 알려진다. 제사를 마친 박처원은 대공분실로 이동하고 오연상은 살려보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박종철의 시신은 옮겨지고 박처원이 도착하고 오연상, 간호사는 병원으로 간다. 의사가 목격자라 질책을 하지만 박처원은 별일 아니라며 박종철 시신을 화장하라고 한다.
화염병을 제조하다가 체포된 학생들을 갈구던 최환 검사에게 공안 경찰들이 와서는 서류 한 장을 내고 도장을 찍어달라 한다. 박종철 사망 경위서, 동의서다. 죽은 지 8시간 밖에 안되었지만 부검도 안 하고 장례도 없이 화장부터 한다는 것이 이상하다. 아버지에게도 동의서를 받았다지만 최환은 안 믿는다. 그러다가 대공 업무라면서 도장 찍으라 하자 도장 못 찍겠다 하니 압박을 넣는 공안 당국에 화난 최환은 시신 보존 명령서를 발부하고 이홍규 검사를 불러 언론에 정보를 흘리라 한다.
박처원은 최환의 행방이 묘연한 걸 알고 서울지검장에 최환을 찾으라 한다. 지검장은 수사관들을 풀어 최환을 잡으라 하지만 그는 지검장실에 숨어 있었다. 이홍규 검사는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를 만나 정보를 흘린다. 기자는 정보를 캐내고 중앙일보에 전화를 해 기사를 낸다. 부산에 살던 박종철 어머니, 누나도 병원으로 간다. 아들이 왜 병원에 있냐는 엄마 정차순의 질문에 조금 다쳤다며 영안실로 데려가고 남편과 큰 아들이 주저앉은걸 보고 어리둥절한데 누나가 울기 시작한다. 병풍, 영정 사진을 보고 정차순은 아들이 죽은 걸 알고 오열한다.
1987년 1월 15일 서울지검 기자실, 윤상삼 기자와 여러 기자들이 중앙일보 신문을 보려고 한다. 기자실 모든 전화가 울리자 신문을 살핀다. 시성호 기자도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하는데 중앙일보는 보도지침을 여겼다며 군인들이 쑥대밭으로 만들어놔서 어디든 도망치라는 얘기를 듣고 피신한다. 파문이 일자 안기부, 치안본부에서는 이 일로 모가지 날아갈 수 있어서 사태를 수습하려고 기자회견을 연다. 어쩌다 죽었냐 묻자 박처원이 준 서류를 보며 읊으려던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어이없어 말을 못잇는데 박처원은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말하고 기자들도 안 믿는다.
목격자로 거론된 의사 오연상은 기자에게 진실을 발설하려는데 공안들이 입단속을 시킨다. 기자들은 공안의 감시를 눈치채고 화장실에 숨어 오연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최환은 부검으로 병원에 와 있는데 보검실은 공안들이 점거해있다. 검사 하나가 검사 직위를 들먹이며 저지하려고 하지만 공안들은 검사를 밀어낸다. 박종철 누나 박은숙이 달려오는데 공안들에게 머리채를 잡혀 끌려나간다. 최환은 유가족들이 아들의 손잡아 볼 수 있게 해달라며 무릎을 꿇었고 경찰들은 강제로 끌고 나가 차애 태우는데 검사, 부검의들은 비웃는 공안들을 보다가 분노를 한다. 박처원에 전화를 해서 부검을 막는 공안들을 안 치우면 공무집행방해죄로 감옥에 넣겠다고 하지만 박처원은 물러서지 않는다.
오연상은 화장실에 가서 윤상삼을 만난다. 공안들이 화장실까지는 안 와서 오연상은 물을 틀어놓고 자기가 본 걸 말하고 물고문에 의한 사망인 것 같다 한다. 부검의와 부검 담당 검사의 대화를 듣고 조카의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된 박원길은 기자들에게 경찰이 죽였다고 외치는데 경찰은 그를 차로 밀어 넣고 윤상삼은 물고문이 아니었냐 캐묻다가 조한경에게 맞아 팔을 다친다. 윤상삼은 동아일보로 돌아와 편집국장과 갈등 끝에 기사로 내보내기로 한다.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황적준 박사를 부르고 박사가 물고문 중 경부 압박으로 인한 질실사라고 부검 소견을 말하자 청와대 봉투를 주며 쇼크사로 처리해달라 한다. 박사는 거절하고 강민창은 나가는 황적준 박사에게 진술해도 발표는 쇼크사라 하고 결국 쇼크사로 발표된다. 결국 화장한 박종철 시신을 가지고 임진강으로 가는 길 기자들은 경찰들이 준비한 가짜 차를 따라가고 윤상삼은 번호를 확인하고 유해를 뿌리는 강가로 간다. 유족들을 감시하던 경찰들은 기자들을 막고 카메라를 던지며 취재를 방해한다.
윤상삼은 최환을 만나러 서울 지검으로 가지만 제지를 당하고 짐을 싸던 최환은 윤상삼에게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외면한다. 윤상삼은 분노를 하지만 최환은 차를 몰고 가지만 일부러 짐 박스를 남겨놨다. 맨 위에 부검 결과서를 본 윤상삼은 급히 숨기고 동아일보로 가고 최환은 이를 지켜본다. 물고문으로 인한 대학생 사망이라는 기사를 본 박처원은 화를 내며 신문을 집어던지고 자리를 뜬다. 과실치사로 감사과에 조사를 받으러 가야 할 그들은 수틀리게 되어서 다른 곳으로 가게 된 걸 눈치챈다. 조한경, 강진규는 신길동 특수수사 2대 분실로 가서 고문을 받는다. 사실을 알게 된 박처원은 둘이 있는 곳에 가서 고문을 중단시키지만 둘을 감옥에서 꺼내줄 수 없었다.
박처원은 고문치사를 과실치사로 바꿔주겠다며 잠깐 감옥에 있으라 한다. 억울한 조한경과 김진규를 추태를 부리고 소란을 들은 교도관 한병용이 동아일보 해직기자 이부영에게 그들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이라 알려준다. 그들은 재야인사 김정남을 연결하는 비둘기였다. 그러고는 퇴근하고 연세대 신입생이 된 조카 연희에게 선물로 마이마이를 주고 잡지를 꺼내 보여주면서 운을 떼고 연희의 얼굴은 굳으며 김정남을 만나라고 하냐며 질색한다. 한병용이 마이마이 가져가려고 하자 연희는 해주겠다고 한다. 연희는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걷는데 불심검문 근무 경찰이 검문을 하고 무장한 전경들이 늘어서 있다. 어느 사찰에 도착한 연희는 함세웅 신부와 대화를 하던 김정남을 만나 삼촌이 말한 잡지를 전한다.
한편, 동아일보 기사로 시위가 일어나고 1987년 3월 3일 시위가 일어나는 명동에서 친구 정미와 미팅을 하려고 나온 연희는 시위를 보고 자리를 뜨려고 한다. 엄청난 굉음, 최루탄이 난사된 거리에 백골단이 나타나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도망가던 연희는 백골단원에게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려던 찰나 마스크를 한 남자가 연희를 데리고 건물 사이로 도망 다니다가 신발가게 아줌마가 둘을 피신시킨다. 연희는 최루탄도 맞고 미팅이 날아나 속상해하니 남자가 복면을 벗고 세수를 하라 한다. 둘은 잠잠해지자 다시 나오고 남자가 신발 한 쪽이 없자 아줌마는 그 꼴로 나가면 잡힌다고 운동화 싸게 주겠다고 하는데 돈이 없어 난감해하니 연희가 돈을 내준다
그로부터 며칠 뒤, 공안경찰들이 갇힌 교도소의 보안계장인 안유는 수감되어 있던 공안경찰 강진규가 가족 면회를 하게 되자 대화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동석한다. 면회온 가족을 보고 자신이 죽인것이 아니라고 하자 공안들이 가족을 쫒아 내고 강진규를 끌고가 한번만 더 헛소리 하면 교도소를 폭파시킨다고 한다.
같은 날 저녁, 강진규 대화록을 하나하나 붙이고 있던 안유에게 동아일보 해직기자 이부영이 면담을 신청한다. 이부영은 "혹시 알게 된 게 있다면 알려 달라"고 요청하지만, 안유는 차갑게 거부한다.
안유는 박처원과 공안경찰의 모욕감과 도가 넘는 행동을 보고 이부영독방에 면담을 신청하여 대화록을 건내주고 이부영은 교도관 한병용을 통해 김정남에게 전달하려 한다.
박처원은 자신의 가족사진 위에 연희 모녀의 사진을 포개어 보여주며 한병용을 협박하고, 누나와 조카까지 들먹이자 한병용은 마침내 무너져 김정남의 은신처를 실토한다. 공안경찰들은 빠르게 김정남이 숨은 향림교회로 달려간다. 이 급박한 순간 연희는 향림교회로 가서 안 당하게 해주세요라며 쪽지를 교회에 숨은 김정남에게 전달한다.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공안경찰들이 들이닥친 것을 알게 된 김정남은 향림교회의 옥상으로 피신하지만, 체포망은 점점 좁혀와 결국 교회 지붕에서 다리마저 다치고 추락할 위기에 처한다. 김정남이 이부영에게 받은 서신을 이미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보냈던 것이다. 미사중 미 모든 사실이 발표되고 성당 마당의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나간 기자들에 의해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박처원은 재빨리 그간 수사한 모든 자료를 폐기 하라고 명령한 다음 사태 수습에 대한 대책회의를 위해 치안본부로 향하지만, 박처원과 그의 수하들 앞에 기자들이 나타나서 취재한다. 박처원과 수하들은 기자들을 막으며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박처원 앞에 윤상삼 기자가 가로막고 박처원에게 있는 의혹들에 대해 질문하더니 냉소적인 미소와 함께 "당신 이제 끝났어."라고 한다. 분을 못 이긴 박처원이 윤상삼 기자의 멱살을 잡지만, 뒤에 있던 사람들이 말리며 치안본부로 들어간다. 그러나 텅 빈 치안총감실에는 탁자에 "박처원을 처벌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서류만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박처원은 거기서 장 부장과 전 대통령의 서명을 보고, 자신이 끝났음을 직감한다. 이후 박처원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참여한 자들은 모두 구치소에 수감되고, 이들 앞에 최환이 나타나 염장을 지르듯, "변호사가 필요하면 연락하시고"라며 명함을 꽂고 간다. 그리고 한병용은 남영동에서 풀려나게 된다.
그로부터 얼마 뒤, 연희는 가판대에 놓을 양초를 정리하던 중 무심결에 가게로 배송된 석간 신문 뭉치를 들여다보게 되는데, 이한열이 시위 도중 직사로 맞은 최루탄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죽어가며 부축을 받는 사진을 보게 된다. 큰 충격을 받은 연희는 신촌을 지나 시청 광장으로 달려가는데, 그 길 가운데에는 회사원들, 평범한 주부들, 택시 기사와 버스 기사 등 수많은 시민들이 시위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시청 광장에 다다른 연희는 버스 위에 올라 시위하러 나온 시민들로 가득한 시청 앞 전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다, 이내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를 같이 외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 역사적 배경
<1987: 그날이 오면>은 1987년 대한민국의 6월 항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다.
1. 박정희 시대: 한국은 특히 1961년 군사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수십 년 동안 권위주의 통치를 받아왔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군부정권으로 경제 발전을 특징으로 했습니다. 정책뿐만 아니라 정치적 억압과 제한된 시민 자유에 대해서도 많은 억압과 탄압을 받았습니다.
2. 1980년 광주항쟁: 1987년 민주화운동을 이끈 주요 사건 중 하나는 1980년 5월 광주항쟁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당하고 이 기회를 노리고 전두환의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군사독제 정권이 계속 이어집니다. 이때 광주 시민들은 전두환 군사독재에 반대하고 민주화를 요구했습니다. 전두환은 언론을 비롯한 모든기관을 통제하여 광주에서 일어난 모든일을 숨기려고 하였으나 외신에의에 공개되어 광주내에서 정부군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되, 이로 인해 수백 명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한 사실을 모든 국민이 알게되었습니다.
3. 지속적인 권위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국제적 압력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1980년대 초반에 여전히 권위주의 통치 하에 있었습니다. 정부는 언론, 야당, 시민사회에 대해 엄격한 통제를 유지했다.
4. 학생 시위: 1980년대 내내 학생 운동가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항의, 시위, 집회를 조직했지만 지속적으로 정부의 강력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5. 1987년 대선: 1987년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는 1987년 6월 10일 부정대선이었습니다. 여당의 노태우 후보가 투표 조작 의혹 속에서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정선거가 밝혀지자 이는 광범위한 대중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전국적으로 항의 시위를 촉발시켰습니다.
6. 6월 민주화 운동: 부정선거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에 대응하여 수백만 명의 한국인이 6월 민주화 운동으로 알려진 거리로 나섰습니다. 시위는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됐으나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인해 많은 부상자가 나왔습니다.
7. 정치 개혁: 국내 시위와 국제적 조사로 인해 압력이 가중되자 한국 정부는 양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여야 교섭이 이뤄져 헌법 개정과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8. 1987년 12월 선거: 협상 결과, 한국은 1987년 12월에 최초의 민주적 대통령 선거를 치렀습니다. 여당 후보인 노태우가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그 과정은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1987년의 사건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전환의 시작을 의미했으며, 이후의 정치 개혁과 보다 민주적인 통치 시스템의 확립을 위한 길을 열었습니다.
총평
역사책에서 보았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인하여 전국적으로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지만 영화를 통해 그 당시 정권이 어떻게 우리들의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탄압하여 우리를 움직이지 못하고, 소리내지 못하게 하였는지를 알게되었고 우리 국민들의 이러한 노력으로 이뤄낸 민주주의가 퇴색되지 않도록 그 뜻을 잘이해하고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