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줄거리
1979년 10월 26일 밤, 국무위원 및 정부 고위관계자, 수도권 및 전방 군부대의 지휘 책임자들이 모두 육군본부로 소집된다. 소집 대상자이자 육군본부 교육참모부 차장인 이태신(정우성) 소장 역시 어리둥절해하며 육본에 도착한다. 이 소장은 육군 헌병감 김준엽(김성균) 준장과 인사를 나누며 무슨 일인지 묻지만, 김준엽은 물론 육본의 그 누구도 영문을 알지 못한다. 잠시 후, B-2 벙커에서 최한규 국무총리가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하고 일시 묵념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비상국무회의를 개최한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난 27일 새벽 4시, 비상국무회의 의결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계엄사령관으로 육군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 대장이 임명된다. 정 대장은 계엄법에 따라 국군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 소장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해 대통령 시해 사건을 조사하게 한다. 전두광은 합수부에 체포되어 조사를 빙자한 고문을 받고 있는 대통령 시해범김동규 중앙정보부장을 향해 조롱하며 빈정댄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으로 장면이 전환되어 눈물을 훔치는 전두광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내의 손을 움켜쥐는 이태신이 차례로 비춰지고, 동시에 거리에서 장례 행렬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모습과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
대통령경호실과 중앙정보부가 수장인 대통령과 대통령경호실장 및 중앙정보부장의 공백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자,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광은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를 독점하게 된다. 그러면서 각 정부부처 차관들을 보안사령관실로 불러모아 보고하게 하고, 차관들의 보고 순서를 제멋대로 바꾸는가 하면, 청와대 비밀금고에서 나온 9억 원을 개인적으로 유용하는 등 온갖 월권행위를 자행한다. 전두광의 도를 점점 넘는 이런 행보를 곱지 않게 보던 정 총장은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군인은 군인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정치와는 멀어지라는, 하나회를 겨냥한 경고성 발언을 한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전두광은 회의가 끝난 뒤 정 대장에게 이태신은 갑종장교 출신이라 너무 경직되어 있고, 수경사에는 좀 더 세련된 사람이 필요하다며 서울을 지키는 육군 최고 요직 중 하나인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직에 그의 친구인 노태건(박해준) 소장을 추천한다
전두광은 정 총장으로부터 엄청난 모멸감을 느끼며 하나회 멤버들과 회의 장소를 떠나려하는 중, 이태신과 복도에서 마주치자 오히려 이태신을 자신의 쪽으로 회유하려는 시도를 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태신의 단호한 거절과 하나회에 대한 경고였다.
한편, 정 총장은 하나회 숙청의 일환으로 국무총리 공관에서 오상국 국방부장관에게 하나회의 핵심 인물인 전두광, 노태건을 각각 동해안경비사령부와 제56보병사단으로 보직이동, 사실상 좌천시킬 것을 건의한다. 하지만 오 장관은 이에 머뭇거리다가 정 대장의 추궁 끝에 하나회에게 뇌물을 받았음을 실토하며 정 총장의 군 인사를 그냥 흘려넘기듯이 허락한다. 그리고 여기저기 퍼져 있는 하나회 군인들을 통해 이 소식은 전두광에게로 그대로 흘러들어간다.
참모총장의 움직임을 알게 된 전두광은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동해안으로 좌천당하는 것도 모자라 군복을 벗게 될 위기에 처한다. 궁리 끝에 전두광은 사관학교 시절부터 동고동락하던 친구인 노태건 소장을 연희동 자택으로 불러, 계엄사령관 정 총장이 10.26 사건 당시 궁정동 안가에 중앙정보부장과 있었다는 걸 빌미로 그를 체포할 것을 제안한다.
이렇게 전두광을 필두로 하나회 회원들은 연희동에 모여 참모총장납치 계획을 세우고 12월12일 거사 날짜로 정하고 작전명 '생일잔치'로 지칭 하면서 전두광을 비롯한 하나회 일당들은 경복궁에 주둔한 제30경비단에 집결한다. 이들은 최한규 대통령이 임시로 머무르는 국무총리 공관에서 대통령 재가를 받는 동시에, 한남동 공관촌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정상호 대장을 체포를 하면서 총격사건이 일어나면서 긴박하게 스토리가 흘러간다.
이 후 이태신이 이사실을 알게되면서 수도를 지키려는 자와 수도를 탈환하려는 자의 공방이 시작된다. 전두광은 하나회라는 군부내 사조직을 이용하여 수도 주변 부대를 마음대로 조종 하면서 이태신의 서울 방어를 계속적으로 방해하고 이태신은 어떻게 해서든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주변 부대의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결국에는 군부 모든 정보와, 도청, 하나회라는 사조직을 모두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이태신은 수도방위사령부 전 병력을 이끌고 경복궁 30경비단으로 공격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광화문 광장에 들어서며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이순신 동상을 올려다본다. 30경비단 앞까지 간 이태신 소장의 진압군은 전차를 앞세워 겹겹이 쳐진 바리케이드를 돌파하려 시도하고, 승리를 확신하는 전두광은 주위에 있는 시민들의 시선을 의식해 진압군이 먼저 사격하지 않는 한 대응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고 자신도 현장으로 나간다. 수경사에 비해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우세한 전두광은 이태신을 조롱하지만, 이태신은 수경사 야전포병단이 경복궁 30경비단을 조준 중이라고 경고하며 5분 안에 투항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는 최후통첩을 한다. 상술했듯 수경사 야포단은 하나회의 인맥이 닿는 곳이 아니었기에 전두광은 이를 통제할 수 없었고, 반란군 수뇌부들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져 너도나도 이탈하려는 난장판이 벌어진다. 지금 이곳에 155mm 포탄을 쏴 버리면 아군과 주변 민가가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을러대는 전두광과 굳은 표정으로 발포 시간을 기다리는 이태신의 대치가 이어지고, 그렇게 제한 시간이 끝나가는 찰나, 국방부장관의 발포 중지 명령으로 이태신은 발포를 포기하면서 수도방위사령부의 임무는 실패로 전두광의 승리로 끝이난다.
영화 역사적 배경
1980년 12월 12일의 군사 쿠데타는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로서 정권을 잡는 과정으로 쿠데타는 대한민국의 정치적인 불안정과 민주화 운동에 대한 군사적인 대응으로서 이뤄졌습니다.
- 군사 쿠데타 계획 수립:1980년 12월 12일의 군사 쿠데타는 정권을 잡기 위한 계획과 구상이 미리 이뤄졌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 계획을 통해 군사력을 동원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 비상계엄 선포:군사 쿠데타 당일인 12월 12일, 전두환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습니다. 이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군사력의 투입과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이루어졌습니다.
- 군사력 투입과 대통령 임명:12월 12일 오전, 전두환 대통령은 군사력을 동원하여 서울을 중심으로 진압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군사에 의해 구금되었고, 전두환은 군사 쿠데타로 대통령으로 선언되었습니다.
- 봉기진압과 통치체제 강화:군사 쿠데타 이후, 전두환 대통령은 군사력을 이용하여 민주화 운동과 반대 세력을 탄압하고 통치체제를 강화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1980년 5월 18일의 광주사태가 발생하였고, 이 역시 군사력에 의해 진압되었습니다. 이렇게 군사 쿠데타로 전두환 대통령은 1980년 12월 12일에 대통령으로서의 권력을 공식적으로 장악하였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이후 군사 독재체제의 지배 아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영화 총평
너무 잘 알려져 있는 역사라 자칫하면뻔한 내용이 될 수 있었던 소재를 가지고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로 보는 결말을 알고 있지만 끝까지 몰입되는 영화입니다. 서울의봄 심박수 챌린지가 있을만큼 보다보면 열받는 포인트가 정말 많은데요 결과적으로 악행을 일삼았던 전두환 노태우는 죽는 그날까지 잘먹고 잘살았고 나라를 지키려했던 군인들의 삶은 너무나도 비참했던 것을 보면서 역사에서는 칭송받을지 몰라도 개인과 그 가족의 비극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마음이 정말 아팠고 이러한 역사를 잊지 말고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잘 이해하고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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